지난달 28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유럽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블랙아웃)가 벌어졌습니다. 약 18시간 만에 전력 공급이 정상화돼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민 6000만 명은 일상을 되찾았지만, 블랙아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정신이 번쩍 들게 한 뉴스였습니다.
지하철·기차·항공기가 멈춰 서고,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 도로는 삽시간에 거대한 주차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 케이블카에서 위험천만하게 탈출하는 인파는 물론, 안전한 도심에 있는 사람들도 인터넷·금융인프라가 올스톱한 상황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마트에는 물과 비상식량을 사재기하려는 사람들이 몰렸죠. 시간이 멈추고 암흑천지가 된 이베리아반도는 ‘인류 문명의 중단’을 느끼게 했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에선 에너지 생산이 불규칙적인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 전력망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편으로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이 일반화된 시대에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이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전쟁·지진·홍수에 비견될 대혼란이 일어나고, 막대한 인명 피해도 불가피할 것입니다.
대규모 정전 사태는 왜 벌어지는지, 블랙아웃의 원인으로 재생에너지가 지목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AI 시대에 블랙아웃의 의미와 예방책 등에 대해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스페인 블랙아웃 원인 분분한 가운데
'들쑥날쑥' 재생에너지 문제도 지적돼 블랙아웃은 한마디로 전기가 부족해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전기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중요한 기기부터 차례로 쓰면 되지 않을까요? 나라 전체의 전력 생산이 올스톱되지는 않을 텐데, 왜 한꺼번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할까요? 블랙아웃은 먼저 전력 공급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기 수급 불일치 수 초 만에 블랙아웃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전기는 교류 전기입니다. 교류 전기는 파도처럼 요동치며 움직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파동을 ‘주파수’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220V의 전압을 초당 60번의 파동(60㎐)에 실어 보냅니다. 그리고 전기는 공급과 수요가 일치해 양쪽에서 일정한 압력이 유지돼야 문제없이 쓸 수 있어요. 어떤 원인으로 인해 전기 공급이 모자라게 되면 전력망은 자신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주파수를 떨어뜨립니다. 이게 전기 장비들이 필요로 하는 ‘최저 작동주파수’에 미치지 못하면 장비는 작동을 멈추고 맙니다. 전기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경우에는 반대로 주파수가 크게 높아져 역시 문제가 생기지요.
그래서 전력망을 관리하는 곳에선 전기의 수급을 맞추는 작업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수행합니다. 밤에는 전기 소비가 줄어드니 발전소를 덜 돌리고, 전기를 많이 쓰는 오후 시간에는 전기 생산을 늘리는 식이죠. 이번 스페인 블랙아웃도 전기의 수급이 맞지 않아 벌어진 일입니다. 전력주파수가 갑자기 떨어지는 상황에서 송·변전 시설이 원래 상태대로 있다가는 고장이 납니다. 송·변전 시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능을 차단하면서 정전 사태가 확산된 겁니다. 그것도 문제 발생 수 초 만에 전체 전력망이 붕괴되고 말았죠.
스페인 재생에너지 70% 넘어
전기의 원리를 이처럼 길게 설명한 것은 블랙아웃의 원인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입니다. 정전 사태 발생 초기엔 산악지대가 많은 이베리아반도의 극심한 대기 기온차, 즉 이상기후 현상이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습니다. 아래쪽엔 차가운 대기, 위쪽엔 뜨거운 대기가 교차하면서 ‘이상 유도전류’가 생겼고, 이게 송전선로와 공명 현상을 일으켜 송전망을 아래위로 크게 뒤흔든 게 원인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 기상현상이 당시에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화재나 사이버 공격 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생산이 급격히 늘며 순간적으로 전기 공급이 급증한 게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실제로 정전 사태 당일 스페인 남서부 태양광발전소에서 2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전력 시스템이 불안정해졌다고 스페인 정부는 발표했습니다.
이베리아반도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거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어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에 유리합니다. 20년 전 스페인의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80%를 넘었지만, 지금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70%를 웃돌고 있습니다. 유럽의 태양광발전은 2019년까지 독일·이탈리아·영국·프랑스 순으로 많이 했고, 스페인은 미미했습니다. 그러던 스페인이 2020년부터 태양광발전을 크게 늘려 지금은 이들 5개국 중 독일 다음으로 2위까지 올라왔습니다.
막대한 투자 필요한 재생에너지
재생에너지는 전기 공급이 들쑥날쑥한 간헐성이 특징입니다. 계절·시간·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지는 거죠. 발전량이 갑자기 줄거나, 반대로 과잉 생산될 경우 위에서 설명한 대로 전력망의 수급 균형이 깨지고 주파수가 급변동해 블랙아웃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주 등에서도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해 블랙아웃 위험이 커지자, 일부 태양광발전을 강제로 중단(출력 제어)한 사례가 많습니다.
이런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경우,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고 일정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기존 화석연료나 원자력보다 훨씬 더 많은 송전망 설비를 갖추고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인프라도 크게 늘려야 합니다. 원자력발전은 안전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고, 재생에너지는 투자비가 과다하게 들어가는 게 문제입니다.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적이라는 분명한 장점과 함께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합니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각 발전 방식의 장단점을 자국의 상황에 맞춰 따져본 뒤,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에너지 믹스(Energy Mix)에 힘쓰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전기의 공급과 수요를 맞추는 전력망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보자.
2. 대규모 정전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찾아보고, 블랙아웃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껴보자.
3. 재생에너지의 장단점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자. AI시대 전기는 혈액, 사고 나면 대재앙
사이버 테러 막고, 수요예측은 정밀하게 ‘블랙아웃’이란 얘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AI)을 떠올릴 겁니다. AI의 대규모 연산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는 일명 ‘전기 먹는 하마’이고, AI에 전기는 ‘피’나 ‘산소’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AI가 질문에 답하려면 일반 검색보다 10배 이상의 많은 전기가 필요합니다. 1년 전만 해도 AI로 구글 검색을 할 경우 필요한 전력량이 아일랜드의 한 해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2030년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전력의 최대 20%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AI 시대엔 블랙아웃의 피해 양상과 크기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겁니다.
AI에 모든 걸 맡기는 시대
문제는 인류 사회의 AI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생성형 AI를 넘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범용인공지능(AGI)이 나오면 모든 사회시스템은 더욱더 AI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칩이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지 못한다고 상상해보세요. AI가 작동을 멈추고, 여기에 연계된 교통신호, 의료 진단, 금융거래, 재난 대응 시스템 등도 모두 정지할 겁니다. 블랙아웃이 단순한 생활상 불편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의 동시 붕괴를 몰고 오는 대재앙이 될 수 있어요.
조금 더 상상력을 동원해볼까요? 정전 때 AI 시스템이 멈추면, 이를 복구하기 위한 ‘인간 전문가’를 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평소 AI는 고도의 자동화와 원격제어로 돌아갑니다. 인간 전문가의 손길이 덜 필요하고, 이는 숙련도 높은 전문직 인력의 양성을 가로막게 됩니다. 사고 발생 시 신속한 AI 시스템 복구가 어려워지는 거죠. AI에 모든 걸 맡겼다가, 위기 때 인간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 블랙아웃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요?
전력망 테러 가능성
블랙아웃은 테러의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어요. 전력망을 사이버공간에서 공격하는 것이죠. 2016년 우크라이나 블랙아웃이 그런 사례입니다. 당시 러시아 군사정보국(GRU)의 해킹 그룹 샌드웜(Sandworm)은 우크라이나 전력망 제어시스템에 침투해 악성코드를 심고 우크라이나 정전 사태를 유발했습니다. 미국의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미국 내 9개 변전소가 공격당해 18개월 이상의 정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물리적·사이버 보안 강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AI 시대엔 AI를 활용한 사이버 테러리즘이 가능하기에 더욱 걱정입니다. AI로 전력망의 취약점을 실시간으로 탐지한 뒤, 대규모 정전을 유발할 수 있죠. 예전엔 국가 주도의 사이버 공격만 가능했다면, 이제는 AI 도구의 힘을 빌려 소규모 테러 조직이나 개인도 전력망을 표적 삼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오픈소스 AI 모델과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위·변조된 명령을 전력망 시스템에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I 기술로 전기 수요 예측도
AI 시대에 맞는 블랙아웃 예방책이 따로 있을까요? 일단 기본은 전력 인프라의 이중화(backup) 및 분산화입니다. 데이터센터, 발전소, 주요 통신 인프라에 대해 전력 공급선과 설비를 이중화하고, 한 곳의 장애가 전체 시스템 마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분산형 전력망(분산 발전) 도입도 필요합니다. 중앙집중식에서 벗어나 소규모 발전소,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분산형 전력망을 확대해 특정 지역이나 설비의 장애가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힌트는 AI 자체에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AI를 사용해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발전소의 최적 전기 생산량을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전력망의 이상 징후를 빠르게 감지해 자동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실제로 지금도 강화 학습, 그래프 신경망 등 첨단 AI 기법을 전력망 운영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AI를 통해 전력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중요합니다. 즉 날씨·시간·과거 데이터 등을 분석해 전력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급 균형을 실시간으로 맞춰가야 합니다. 민간 기업들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삼성전자 등은 지역 내 전력 사용량이 급증할 때 스마트홈 플랫폼을 통해 가정 내 가전기기의 전력 소비를 자동으로 줄여주는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블랙아웃을 예방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인공지능을 ‘전기 먹는 하마’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2. AI의 막대한 전기 수요에 대비한 전기 공급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3. 범용인공지능(AGI) 수준에 이르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친구들과 얘기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재건축 규제 완화가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정부가 과거 추진해온 재건축부담금, 즉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나 재건축 사업 기간을 단축하는 특별법 도입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재건축부담금을 부과받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머지않아 지자체로부터 부담금 납부를 통보받게 되면 납부가 현실이 될 수 있어서다. 이미 부담금 통보를 받은 일부 단지는 납부 거부와 소송에 나서는 등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재건축 규제 방법과 관련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우선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재건축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재건축을 쉽게 하면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재건축 규제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찬성]1분기 수도권 아파트 공급 70% 급감, 초과이익 환수 '과도'…규제 풀어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조합원이 얻은 이익이 인근 집값 상승분과 비용 등을 빼고서도 1인당 평균 3000만 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의 최고 50%를 환수하는 제도다. 주택 가격의 안정과 사회적 형평성을 위해 재건축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가져가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이 제도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2006년 법제화된 후 2008년부터 적용해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이 제도의 시행을 일시 중단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적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후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다시 부활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과도한 규제라며 폐지를 추진했다.
재건축 부담금은 조합원들의 부담을 키운다. 서울 용산구의 한 단지에서는 일부 조합원이 약 8600여만원의 재건축부담금을 체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재건축을 마친 이 단지는 재건축부담금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용산구청은 조합원 31명에게 16억6000만원의 부담금을 내게 했는데, 일부는 납부를 못 하고 있다. 집값은 올랐을 수 있지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현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건축부담금은 사업의 수익성도 크게 낮춘다. 이 때문에 사업 추진을 더디게 하거나 아예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올 1분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 분양은 전년 동기 대비 70%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 외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서울에서는 아파트를 건립할 땅을 더 이상 찾기 힘들다. 국민의힘이 대선 공약으로 분양가 인하 방안을 제시한 것도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다. 재건축·재개발 등 아파트를 건설할 때 용적률과 건폐율을 높여 사업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재건축 이익은 부당하게 얻은 것이 아닌데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는 것 자체가 재산권을 침탈하는 과도한 규제다. 이런 측면에서 재건축부담금 완화나 폐지, 사업 기간 단축을 위한 특별법 도입 등이 필요하다.[반대] 섣불리 풀었다간 집값 급등 '위험'…강남 등 투기 막을 장치 필요 여전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재건축부담금이 부과되는 단지는 지난해 기준 전국 총 68개 단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원 1인당 평균 1억원가량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건축부담금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부터 박근혜 정부까지인 2012~2017년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의 경우 특례 조치를 통해 면제됐다. 문재인 정부부터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가 준공되면서 본격적인 부과가 시작되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한 근본적 이유는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 환수다. 1:1 재건축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재건축에서 초과이익이 발생한다. 헌 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를 짓는 데다가 가구수도 기존 단지보다 늘어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새 아파트가 부족한 경우 강남 등 인기 지역에서 재건축하면 상당한 초과이익이 남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파트 가격은 도로, 공원, 학교 등 주위 기반 시설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즉 사회 기반 시설이 재건축 단지의 초과이익에 기여하는 바가 적잖은 셈이다. 따라서 초과이익 중 일정 부분은 정부가 환수해 공익을 위해 쓰는 게 타당하다. 재건축으로 인해 가구수가 증가하면 그만큼 인구가 늘고, 쓰레기처리 등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비용의 충당을 위해서라도 초과이익 환수는 불가피하다.
집값 안정 측면에서도 재건축부담금은 필요하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사라지면 투기 자금이 재건축 등 부동산시장에 대거 유입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집값이 급등해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사업 기간 단축 등 재건축을 활성화할 법안 추진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강남 등 인기 지역의 부동산은 규제가 풀리면 즉시 반응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지난 2월 잠실·삼성·대치·청담동 거래 허가를 해제했다가 집값이 들썩이자 한 달여 만에 다시 규제를 강화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생각하기 - 시장 상황 고려해 점진적 완화 후 폐지 검토를 재건축부담금은 ‘미실현이익’을 환수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헌 집이 새집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이 집을 팔지 않는 한 차익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많게는 억대에 달하는 환수금을 내라고 하니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나오는 것이다. 양도소득세 등 다른 부동산 세금을 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중과세 성격도 있다. 무엇보다 수도권, 특히 서울에는 재건축이 아니면 공급을 늘릴 방법이 없다. 재건축 규제를 풀지 않으면 공급 부족에 따른 부동산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를 완화하면 즉각 반응하는 게 부동산 시세다. 강남, 용산 등 인기 지역의 가격은 순식간에 치솟을 수 있다.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는 효과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재건축부담금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폐지 수순으로 가더라도, 현실적인 부동산 상황을 보고 단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옳은 방향이라고 해도 시장 반응을 고려하지 않으면 각종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욱진 논설위원
현재 고2가 치르는 2027학년도 대입의 전체적 윤곽이 발표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발표에 따르면 2027학년도 전국 4년제 대학의 총모집 인원은 34만5717명으로 집계됐다. 2026학년도 대비 538명이 늘었다. 수시 모집은 27만7583명(80.3%), 정시 모집은 6만8134명(19.7%)이다.
전형 유형별로는 수시 학생부교과 15만6403명(45.2%), 학생부종합 8만1931명(23.7%), 논술 위주 1만2711명(3.7%), 실기·실적 위주 2만1954명(6.4%)을 선발할 계획이다. 2026학년도 대비 학생부교과는 908명, 학생부종합은 558명, 논술 위주는 152명, 실기·실적 위주는 89명이 늘었다. 그 외 기타 전형을 포함해 수시 전체는 2026학년도 대비 1735명을 더 선발한다. 반면 정시는 2026학년도 대비 1197명이 줄어 6만8134명이 예고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전국 종합으로는 수시는 늘고, 정시는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수시 비중은 80.3%에 달한다. 수험생 입장에서 수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전국 평균에 따른 ‘착시’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더 나아가 서울권 주요 대학으로 좁혀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먼저 수도권 소재 대학의 정시 비중은 전국 평균 19.7%보다 높은 34.2%(13만4787명 중 4만6031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주요 대학은 정시 비중이 더 높다.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정시를 40% 이상으로 확대한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2027학년도 정시 비중은 43.4%(5만730명 중 2만1997명)로 분석된다. 이들 대학의 2026학년도 정시 비중은 평균 44.0% 수준이다. 주요 대학은 꾸준하게 정시 비중이 평균 43~44%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정시 하락 폭은 0.6%에 불과해 입시 지형에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수치는 최초 발표한 계획 그대로다. 여기에 수시에서 선발하지 못해 정시로 넘어가는 이월 인원까지 감안하면 실제 정시 비중은 대학별로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주요 16개 대학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등 수험생 선호도가 높은 주요 대학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결국 2027학년도 또한 수도권 대학일수록, 더 나아가 서울권 주요 대학일수록 정시 비중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시와 정시 사이 균형 잡힌 준비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만 주요 대학 중 연세대는 2027학년도에 한시적으로 정원 감축이 발생해 지원 흐름 및 합격선에 변화가 예상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연세대는 2025학년도 논술 재시험 실시로 추가 합격자가 발생함에 따라 2027학년도 모집 정원을 일부 감축하기로 했다. 16개 학과에서 2026학년도 대비 58명을 줄인다. 감축 비율이 높은 학과로는 대기과학과 18.5%(5명), 생화학과 17.6%(3명), 도시공학과 17.1%(6명), 건축공학과 13.0%(9명), 화학과 11.6%(5명) 등이 있다.
2027학년도 논술 위주 전형으로는 전국 44개 대학에서 1만2711명을 뽑는다. 2026학년도 대비 152명이 늘었다. 논술전형은 내신의 영향력이 미미해 주요 대학도 합격생의 내신 평균 등급이 4~5등급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내신 성적은 다소 떨어져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해 수험생 사이에 관심이 높다. 2027학년도 주요 대학의 논술 선발 인원을 살펴보면, 홍익대가 579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중앙대 476명, 경희대 471명, 성균관대 381명, 고려대 349명, 이화여대 297명, 연세대 285명, 한양대 232명, 서강대 171명 순으로 나타났다.
선발 인원 증가 폭이 큰 대학으로는 서울권에선 삼육대 124명(148명→272명), 홍익대 75명(504명→579명), 서경대 43명(173명→216명), 경인권에선 신한대 85명(107명→192명), 가천대 32명(1036명→1068명), 지방권에선 고려대(세종) 67명(203명→270명), 경북대 22명(538명→560명) 등이 있다.
2027학년도 고3 학생 수는 44만4434명으로 추정된다. 2026학년도 45만3812명 대비 9378명(2.1%)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험생들은 학생 수가 줄어 경쟁이 덜하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겠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2027학년도는 현행 통합 수능 마지막 해로 N수생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2028학년도에 수능 체제가 바뀌기 때문에 2027학년도를 마지막 기회로 보고 결판을 내려는 N수생이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의대의 모집 정원이 아직도 결정되지 않아 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가 얽혀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정책 발표 등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선 목표와 계획이 탄탄해야 한다. 대교협 발표와 함께 대학별 구체적인 전형 계획안이 각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현재 고2들은 대학별 전형 계획안을 참고해 목표 대학 및 학과 설정, 남은 기간 학습전략 등 대입 전략의 밑그림을 지금부터 그려놓기를 추천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즘 세계 경제 이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고율의 관세 부과로 무역전쟁의 파고를 높이더니, 이번엔 기준금리를 빨리 내리지 않는다며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해임까지 압박했습니다. ‘세계의 중앙은행’인 Fed의 독립성에 위협이 가해지자, 세계 금융시장은 주가 급락 등 충격파에 시달렸어요. 예상외의 큰 반향에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을 해임하겠다는 주장을 즉시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Fed의 금융통화정책에 대한 미 행정부의 간섭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미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트럼프도 관세정책을 비롯한 자신의 경제정책 때문에 당장은 미국 내 물가가 올라가고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을 걱정했을 겁니다. 다만, Fed 의장을 ‘늑장쟁이(Mr. too late)’ ‘중대 실패자(a major loser)’라고 공개 비난하고, 해임 가능성까지 내비치는 압력을 행사한 일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란은 왜 발생하는지, 그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궁금해집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와 독립성을 지켜온 역사적 사례 등을 4·5면에서 공부해보겠습니다. 정부·정치권, 단기적 경기부양에 '관심'
중앙은행에 압력 넣다가 갈등 폭발 한 나라 경제정책의 양대 축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입니다. 재정정책은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항만·도로 등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고 각종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간이 공급하기 힘든 재화와 용역을 정부가 직접 나서 생산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나라 전체의 후생을 늘리고 경제발전을 촉진합니다.
물가와 성장은 상충관계
통화정책은 통화량이나 금리를 조절해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 고용 증대 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는 민간에서 출발한 중앙은행이 도맡는 구조로 정착됐습니다. 중앙은행은 표준화된 은행권을 독점적으로 찍어내도록 국가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민간은행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정부의 은행’이 된 민간은행이 은행 간 결제 지원까지 하면서 ‘은행의 은행’으로 발전한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화량 조절,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까지 책임지게 됐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는 정부의 외곽에 중앙은행이 만들어진 역사에서 비롯됩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물가’와 ‘고용’ 또는 ‘성장’은 동시에 달성하기 쉽지 않은 거시경제 목표입니다.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돈줄을 조이면 고용과 성장을 기대만큼 이루지 못합니다. 반대로 성장을 촉진하려면 금리인하와 같은 금융완화 정책이 필요한데, 이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위험이 큽니다. 한마디로 서로 충돌하는 관계(trade-off)입니다. 평상시 정부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느냐 긴축하느냐를 놓고 정책적 판단을 하게 되는데, 중앙은행도 정부와 같은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펼치기를 원합니다.
만약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동시에 찾아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정부는 물가도 걱정하지만 결국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침체를 방어하는 데 집중할 겁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물가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해 금리인상을 밀어붙일 수 있어요. 정부와 중앙은행 간 갈등은 불가피하고, 정부가 중앙은행에 압력을 가할 경우 독립성 시비가 일게 됩니다.
정치적 경기순환, 재정 지배의 폐해
이를 경제이론 측면에서 보겠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는 ‘정치적 경기순환 이론(Political Business Cycle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호황-침체-불황-회복’을 되풀이하는 것을 경기순환이라고 하는데, 이 이론은 경기순환이 정치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봅니다. 즉 선거를 앞둔 정부와 정치권이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 통화정책을 활용하려는 유인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선거 전 표를 많이 얻기 위해 금리를 내리거나 통화량을 늘리면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선거 이후엔 반대로 풀린 돈을 회수하려고 긴축정책을 폈다가 급격한 경기침체를 맞을 수 있습니다. 정치권은 민생을 위한다는 논리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원하기 일쑤입니다. 기본적으로 금리인상을 싫어합니다. 정부도 한편으론 중장기 경제발전에 힘쓰면서도 정권이 유지되는 기간 동안 단기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보이는 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독립성을 가진 중앙은행이라면 정부와 정치권의 이런 주기적인 정책 개입을 차단해 경제의 불필요한 변동성을 줄여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보수적 중앙은행 이론(Conservative Central Banker Theory)’이 있습니다. 정부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우려하는 보수적인 중앙은행 총재를 임명하면 그 사회의 후생이 개선된다는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한 이론이죠. 물가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둔 보수적 중앙은행 총재로 인해 경제주체들의 기대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고 실질금리의 변동성도 줄어들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난다는 게 요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 방지 이론’이 있습니다. 재정 지배란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중앙은행에 통화 발행을 압박하고, 그 결과 물가상승이 가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재정적자의 화폐화’라고도 합니다. 독립성이 높은 중앙은행이라면 이런 정부의 재정 지배를 막아 물가안정을 유지하고 재정건전성과 금융 안정, 국가신용도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1. 중앙은행이 역사에 등장한 배경과 형성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2.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단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해보자.
3. 정치적 경기순환이론의 사례를 찾아 그 폐해를 확인해보자.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돼야 정책효과 생겨
시장흐름 기민하게 대응하는 전문성도 필요 이제 중앙은행의 독립이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겠습니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다비드 로멜리 교수 등은 작년 논문에서 155개국의 중앙은행 독립성 지수와 인플레이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아질수록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독립성 지수가 최하위인 나라와 최상위인 나라를 비교해보면 연간 물가상승률이 약 3.7%포인트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2022년 브라질 중앙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은 직접적으로 소득불평등이나 빈곤 문제를 해결하진 않지만, 인플레이션을 막아 결국은 저소득층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물가안정 외에도 통화정책의 신뢰와 효과를 높이고, 정부 재정지출의 무분별한 확대를 막아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중앙은행이 독립을 지키는 한편,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장과 소통(communication)을 잘하면 중앙은행이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는다는 시장의 믿음이 생깁니다. 앞으로의 통화정책도 어떻게 될 것이란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해집니다. 이런 기대에 따라 시장참여자들이 경제적 의사결정을 내리면 당초 통화정책이 원했던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게 됩니다.
독립성은 시장 신뢰 얻는 길
다음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을 보장하는 장치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첫 번째는 법률적 독립입니다. 먼저 중앙은행 총재나 이사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임명되도록 법률에 규정하고, 임기도 법률에 못 박는 겁니다. 미국 Fed의 이사는 14년, 의장은 4년의 임기를 보장받습니다. 의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습니다. 법률에 물가안정과 같은 중앙은행의 주된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만, 기준금리나 지급준비율 같은 정책 수단은 중앙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실질적 운영의 독립입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에 예산 편성과 재정 지출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겁니다. 미 Fed는 정부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국채 이자 등 자체 수입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정부에 직접 대출을 해주거나 국채를 무조건 인수하도록 하는 걸 막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7명 가운데 2명의 임명 추천권을 정부(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가 갖고 있고, 일부 예산(급여성 경비)에 대해선 정부가 승인권을 쥐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마틴과 그린스펀 의장의 노력
현실에선 제도적 장치가 전부가 아닙니다. 대쪽 같은 중앙은행 총재가 나와 독립성을 지키려 노력하고, 이게 관행으로 굳어져야 합니다. 미국에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1951~1970년 Fed 의장을 지낸 윌리엄 멕체스니 마틴이 대표적입니다. 1965년 당시 린든 B. 존슨 미 대통령은 베트남전쟁과 ‘위대한 사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의장은 “미국 경제는 완전고용 상태여서 금리를 내렸다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며 거꾸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마틴 의장이 나를 배신했다”고 맹비난했지만, 결국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이는 Fed 독립의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마틴 의장이 재임하는 동안 미국 경제는 안정적 성장을 이어갔고, 단 두 차례만 단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그는 “Fed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펀치볼(술잔)을 치우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어요. 호황 때 경기과열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1987~2006년 Fed 의장을 맡은 앨런 그린스펀은 시장 흐름을 읽는 탁월한 능력과 기민한 대응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1987년 블랙 먼데이(주가 대폭락) 당시 신속하게 유동성을 공급하며 금융시장의 안정을 지켰고, 2001년 9·11 테러 땐 금리 인하를 통해 위기를 관리해나갔습니다. 물가만 잡는 고금리 정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거죠. 그의 이런 노력은 이후 미국 역사상 최장기 경제호황을 이끌었습니다. NIE 포인트1. 물가안정이 우선일까, 성장과 경기부양이 우선일까?
2. 미국 Fed가 과거 정책에 실책한 사례, 정부 압력에 굴복한 사례도 찾아보자.
3. 한국은행의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